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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by stevenbob 2023. 1. 7.

이지영 강사의 요약본을 보다가 궁금증이 생겨 한번 읽어보게 되었다.

 

https://youtu.be/NSvRPmEVThA

이지영 강사는 어려운 시골에서 무료급식을 지원 받아가며 힘들게 살았지만 악착같이 노력해서 공부해서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해당 영상에서는 그런 본인 조차도 암기력이 좋지 않게 태어났다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등 정말 운이라는 요소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인지 되묻는다.

평소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뭔가를 최상까지 이뤄낼 수 있는, 그리고 태생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질서의 꿈'을 의미한다.

 

그 증거는 '일반 열람실을 보면, 물어볼 필요조차 없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1만권이나 비치되어 있다. 자리마다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노인도 젊은이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흑인도 백인도, 경영자도 노동자도, 장군도 사병도, 저명한 학자도 학생도 한 데 섞여 있다. 모두가 그들이 가진 민주주의가 마련한 그들 소유의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는다.' 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 시대에서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아메리칸 드림의 정의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독, 다작, 다상, 실천을 통해서 나의 재능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다. 능력 주의와 자본 주의가 사회를 그나마 원만하게 이뤄나가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을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 되새기며 겸손하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Chapter1_승자와 패자

하버드와 스탠포드 대학생 삼분의 이는 소득 상위 5분위 가정 출신이다.

아이비리그 대학생 가운데 하위 5분위 출신자는 4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하버드와 그 밖의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소득 상위 1퍼센트(연간 63만 달러 이상) 출신의 학생은 하위 50퍼센트 가정 출신 학생보다 많다.

 

이는 노력과 재능 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미국인의 믿음은 더 이상 사실과 맞지 않는다. 기회 균등에 대한 담론이 과거와 같은 반응을 얻지 못 하는 이유라 볼 수 있다.

 

=> 대치동, 8학군 등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Chapter2_'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사람들에게 충분한 노력과 믿음만 있다면 부와 건강을 이룰 수 있다' 는 번영 복음의 '자신의 운명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는 관념은 매우 능력주의적인 이야기이다.

개인의 책임을 극찬하는 그 개념은 일이 잘되어갈 때는 기꺼워하지만 반대로 일이 잘못될 때는 사기를 꺾고 심지어 자책에 시달리게 만든다.

 

건강 문제를 생각해볼 때 우리 건강이 우리 손에 있다는 말은 병이 드는 것은 불운이 아니라 '병자의 덕 없음'으로 해석된다.

 

Chapter3_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이 나라는 어떻게 생긴 사람이든 어디서 온 사람이든 따지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재능이 허락하는 한도까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면 됩니다.'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은 그들의 대통령이 앞으로 이뤄지길 바라는 보다 평등하고 이동성 있는 나라를 제시했다기보다, 현재 미국의 실제 상황을 묘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일종의 찬사를 했다. 힘써 일하기만 하면 아무 특권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는 나라를 실현한 미국에 대하여.

그러나 그의 말은 찬사에서 야심으로 넘어갔다. "저는 오늘날 제가 받은 교육의 기회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유일한 사람입니다. 저는 미국의 모든 아이들이 그런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반드시 이루고자 싸우고 있는 목표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의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누리는 한, 저는 이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팩트에서 희망으로 넘어가고, 다시 팩트로 넘어가는 희망과 팩트를 뒤섞는 이런 어법은 승리와 패배의 의미가 뭔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능력주의가 나아갈 이상에 대한 야심을 나타내면, 패배자는 시스템을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능력주의가 주어진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패배자는 스스로를 비난하도록 요구받게 된다.

 

Chapter4_최후의 면책적 편견,학력주의

더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도록 권하는 일은 좋다. 못사는 집 사람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더욱 좋다. 그러나 불평등과 수십년 동안의 세계화로 노동자가 떠안게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오직 교육에만 집중하는 일은 심각한 역효과를 낳는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적 명망이 추락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의 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꼴이 된 것이다."라고 말해줌으로써 능력주의자들은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일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부지불식간에 학력주의를 조장한다.

 

chapter5_ 성공의 윤리

 

내가 타고난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것 역시 우연이며, 내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는 매우 인기 있는 스포츠인 농구를 하며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만약 그가 농구선수가 아닌 프로스코 화가가 각광을 받던 사회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각자 재능과 창의력으로 스스로의 조건을 낫게 만들 수 있다는 능력주의에 매우 유력한 옹호론이다.

불평등 상황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남다른 출발점에서의 유리함(사랑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아마도 부유한 가족, 헌신적인 교사와 훌륭한 학교 등등)' 덕을 보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가 정의롭다고 판단하기 전에, 이 회의주의자들은 '모든 아이들에게 그 출신 가정과 무관한 교육, 문화적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책'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상류계급 사람은 아주 무감각해지지 않는 이상, 적어도 살면서 가끔씩은 자기 부대의 사병, 저택의 집사나 파출부, 댁시나 버스 운전사, 객차나 지방 술집에서 볼 수 있는 주름살 많은 얼굴에 눈빛이 매서운 일꾼 등 그런 보잘 것없는 지위의 사람들이 적어도 자신 못지않은 지성, 위트, 지혜를 갖추고 있음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능력주의 옹호자들도 열심히 훈련하는 운동선수가 누구나 금메달을 딸 자격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장 성실한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도, 가장 많이 노력한 노동자가 가장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성과가 중요하다.

그들의 성공이란 재능과 노력의 혼합물이며, 두 가지는 쉽게 분리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성공은 성공을 낳으며,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사회가 보상을 주기 위한 동기 부여는 매우 힘들 수밖에 없다.

 

롤스는 '많은 돈을 번다고 해서 그것에 그 사람의 능력이나 미덕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한다.

 

돈이 거의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사회에서 능력 주의는 부자에게 '당신의 부는 당신이 사회에 기여한 탁원한 가치 덕분이다' 라고 말해준다면? 그의 오만과 자축을 불러오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난한 사람에게 '당신의 가난은 당신이 기여한 것의 가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면? 그가 자신감과 긍지를 가질 수 있을까?

 

Chapter6_'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교육 기회를 넓히는 일은 확실히 좋다. 최근 수십 년간 대학들은 흑인과 라틴계 학생들 모집에 큰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저소득층 학생 비율은 별로 늘지 않았다. 사실 소수 인종이나 민족을 포함하는 소수집단 우대정책에 대해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학들은 그 우대정책을 은근히 부유층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Chapter7_일의 존엄성

지난 40년 동안 대졸자와 고졸자의 수입 격차는 두 배로 늘어났다. 1979년, 대졸자는 고졸자보다 40퍼센트 정도 많은 수입을 올렸다. 2000년대에는 80퍼센트까지 높아졌다.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은 우리 성공은 오로지 우리가 이룬 것이라고 가르쳤고, 그만큼 우리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느낌을 잃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유대관계의 상실로 빚어진 분노의 회오리 속에 있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결론_능력, 그리고 공동선

제임스 애덤스의 <미국의 서사시>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결론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애덤스가 미국은 '인류에게 내려진 독특하고 유일한 선물'이라고 쓴 까닭은 그 꿈이 '그 땅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더 낫고, 더 부유하고, 더 온전한 삶을 살아갈 기회가 누구에게나 자신의 역량이나 성취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지 자동차나 높은 급여에 대한 꿈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여 뭔가를 최상까지 이뤄낼 수 있는, 그리고 태생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질서의 꿈이다.

 

일반 열람실을 보면, 물어볼 필요조차 없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1만권이나 비치되어 있다. 자리마다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노인도 젊은이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흑인도 백인도, 경영자도 노동자도, 장군도 사병도, 저명한 학자도 학생도 한 데 섞여 있다. 모두가 그들이 가진 민주주의가 마련한 그들 소유의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는다.

 

애덤스는 '이 장면이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확실한 사례다. 사람들 스스로가 쌓은 자원으로 마련된 수단, 그리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대중 지성. 이 예가 우리 국민 생활의 모든 부문에 그대로 실현된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살아 있는 현실이 되리라' 라고 썼다.

 

'사람들은 시장이 각자의 재능에 따라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적 신념은, 연대를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든다. 대체 왜 성공한 사람들이 보다 덜 성공한 사회구성원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설명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을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